[mhab] 시선

슬아 님, 이다지도 짧고 모자란 글이나 부디 받아 주세요. 사랑스러운 아가들을 그려 주셔서, 그리고 모자란 이 녀석을 예뻐해 주셔서 언제나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

















  도대체 얼마 동안 이러고 있었던 걸까. 택도 없이 좁은 방에 십여 명이 오글오글 모여서 자는 것은 지난 합숙에서도 겪은 일이었지만, 지금은 그 때처럼 두려운 것도 없는데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 때와 같은 이유라면 차라리 낫겠다고, 하지만 그를 원망하지는 못한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규칙적인 움직임에 온 신경이 곤두서 있다. 돌아볼까, 아까부터 얼마나 고민을 했던가. 여느 때처럼 아이들이 이부자리를 펴면서 난동을 부리던 몇 시간 전, 그 때 기민하게 그의 옆을 피했어야 했다. 하지만 문득 깨닫고 보니 몸을 눕힌 자리가 그곳이었고 방은 여전히 너무도 좁았던 것이다. 어깨 언저리에 느껴지는 따뜻한 것이 그의 몸이고 한 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이 그의 얼굴이라는 것을 알자마자 너무 놀라서, 너무 벅차서,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너무 기뻐서 그만, 그를 향해 있을 수가 없었다.

  사실은 보고 싶은데, 이렇게 몰래 라도 눈에 담아 두고 싶은데. 조금만 보면 안 될까,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안 돼, 그렇게 베개에 고개를 파묻어 버리고 만다. 언제부터 그를 바라보는 것이 이렇게나 힘들었는가. 아니야, 문제는 나야, 내가 나쁜 거야,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거야. 그를 보고 있노라면 새끼손가락 끝부터 어떤 열기가, 팔목과 팔꿈치와 어깨를 따갑게 타고 올라와 심장을 감싸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뜨거워진 피가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온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다. 말을 걸기는커녕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눈을 맞추지도 못한다. 그가 곧 부를 거라고 기대하는 순간, 이런 나를 보면서 씁쓸해 하는 그의 시선이 느껴져서 울고 싶어지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망설이지 않고 내 이름을 부른다, 미하시. 손 줘봐, 그가 그렇게 말하면 미처 깨닫기도 전에 내 손은 그의 손에 맞닿아 있었다. 오오, 따뜻하네. 그렇게 말하면서 미련 없이 돌아서 버리는 등에 겨우 시선을 맞추며 이렇게 생각한다. 이 손이 요즘 따뜻한 이유는 바로 당신 때문이라는 걸 그는 과연 알고 있을까, 하고.

  이런 생각의 끝과 맞물린 뒤척임에 놀라 무심결에 뒤를 돌아보면, 여전히 평온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잠들어 있는 그가 있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달이 밝은 걸까, 세상에는 달빛을 가릴 만한 요소들이 참 많은데. 갑자기 흘러가는 구름일 수도 있고 문득 드리워진 나뭇가지일 수도 있고 유리의 촘촘한 어그러짐일 수도 있고 창가에 내려앉은 커튼일 수도 있고, 하지만 진실은. 그 모든 요소들을 말없이 물리치고 이 정도의 달빛으로도 그를 볼 수 있는 내 눈이, 이런 어둠 따위는 아무 상관없다는 듯이 그를 볼 수 있는 내 뜨거운 두 눈이 문제인 것이었다.

  새삼스러웠다, 참 오랜만에 눈에 들였다고. 하루도 빠짐없이 마주하는 얼굴인데 이렇게 찬찬히 들여다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가 이렇게 생긴 사람이었던가, 반듯한 이마와 바른 눈썹과 오똑한 코와 총명한 입매를 가진, 하지만 몽경夢境을 헤매는 중이라 조금 풀린 얼굴로 웃는 듯 우는 듯 알 수 없는 말을 웅얼거리면서.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잠들어 있을 때에도 마냥 엄할 것만 같았는데. 하지만 이런 모습도 그에게 너무도 잘 어울려서 기실 이쪽이 원래의 그일지도, 그저 내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것뿐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이런 그를 알고 있을까. 이렇게 고요히 잠든 그를, 이렇게 풀어진 표정을 알고 있을까. 이런 그의 옆에서 그 사람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 보기만 해도 두근거리는 이 단정한 옆태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쩌면 나처럼 저 사랑스러운 뺨을 쓰다듬어 보고 싶다고, 부드러운 목덜미를 끌어안고 싶다고, 약간 까슬한 저 입술에 내 입술을 묻고 싶다고,

그에게 닿고 싶다고,

틀림없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리고 분명 그 사람을 좋아했던 그는, 그 사람과 마주친 것만으로도 그렇게나 동요했던 그는, 나는 절대로 닿을 수 없는 깊은 곳에 그 사람을 묻고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날 보고 웃었던 그는 아마 그 사람의 손길을 피하지 않았겠지. 어쩌면 마주 보면서 웃었을까, 그 입술이 닿을 때마다 약간은 부끄러운 듯, 하지만 참 행복하게, 기쁘게, 역시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화사한 얼굴로, 그 사람 앞에서 웃었을까.

  아아, 이런 생각만으로도 다시 열기가 퍼져 나가기 시작한다. 조금만 손을 뻗으면, 조금만 고개를 기울이면 나도 닿을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그가 바로 내 앞에서, 내 숨결이 닿는 곳에서 이런 나를 모른 채 무방비하게 잠들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고, 그는 그 사람을 좋아하듯 나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니까. 하지만 어째서, 나는 이다지도 그를 사랑하는데, 그의 손바닥이 닿는 그 짧은 순간을 위해서 길고 긴 하루를 버틸 정도로. 그런데 어째서 여전히 그가 품고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닌 그 사람인 것인지, 매일 함께하는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인지 그것이 너무도 속상해서.

  미하시, 왜 그래, 나쁜 꿈이라도 꿨어? 어느 새 눈가의 물기가 내 뺨을 적시다 못해 그의 뺨 위로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그가 이렇게 물었을 때에야 알았다. 졸음과 당황이 묻어나는 낮은 목소리와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는 딱딱한 손가락이 한없이 상냥해서, 하지만 다시금 그를 눈에 담을 수가 없게 되어 버려서. 고개를 떨군 채로 아베 군, 아베 군, 그의 이름을 소리 죽여 부르는 것 밖에 못하는 내가 너무나 싫어서, 그래서 할 수 없이 그의 손을 부여잡고 한참을 울었다.









20071111, complete.

by 얼그레이 | 2007/11/11 22:36 | 천일야화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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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7/11/11 23:0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얼그레이 at 2007/11/12 19:29
비공개// 전 그저 읽고, 나쁘지 않아서, 잘 읽었어요, 라고 흔적만 남겨 주셔도 기쁘답니다. 저도 가을 타나 봐요, 무뇌아적 달달물 전문이라고 외쳐 놓고 이런 걸 다 쓰고....;;;;
Commented by 달시야 at 2007/11/12 20:05
아이구우우ㅠㅠㅠㅠ그저 아주 좋아요ㅠㅠㅠㅠ미하시이..!!!!!울지마 울지마 울지마....
제가 다 가슴이 아프구요. 미하시의 생각이 정말 와닿아서 절절하네요. 아베군, 아베군 하면서 손을 부여잡고 우는게 너무 아프고 애틋해서...으앙...ㅠㅠㅠㅠ...
Commented by 얼그레이 at 2007/11/13 01:51
달시야 님, 그저 아주 감사합니다. ㅠㅠ 사실 울릴 생각은 없었는데 쓰다 보니 울려 버리고 말았어요. 가을 타는 걸까요, 우는 아이들이 자꾸 보고 싶으니. 그런 의미에서 달샤 님의 미하베 회지가 (스읍) 빨리 보고 싶고요. 순정이 좋아요, 순정이!!
Commented by 슬아 at 2007/11/13 21:03
으하하하하 절 위해 쓰신 거래요!! 부럽죠? 부럽죠? (..)
미하시 너무 좋고 아베 너무 좋고 블로그에서도 모자라 여기서까지 추태 한 번 부려보았습니다(..)
Commented by 얼그레이 at 2007/11/14 20:39
으하하하, 슬아 님이 저한테 주신 것이 얼만데 이런 소설 따위 얼마든지 드리고만 싶어요. T_T 슬아 님, 사랑해요. (부비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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